시간과 능력은 부족하지만


금주의 Reading은 도널드 노먼(Donald Norman)의 『The DESIGN of EVERYDAY THING』을 읽으며 'affordance'에 대하여 생각해보게 되었다. 노먼에 의하면 affordance란 "사물의 속성과, 그 사물을 어떻게 사용할지 결정하는 사용자의 능력 간의 관계"이다.


굳이 학계의 죽은 언어 한국어로 번역하고 싶지는 않지만, 어쨌거나 '행동 유도성'이라는 뜻이다. 즉, 어떠한 행동을 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힌트를 사용자에게 주는 것이라는 의미다.


노먼은 이러한 affordance와 더불어 그 안에서 "표시, 소리 등 인간에게 무엇이 적절한 행동인지를 알려주는 인지 가능한 지표"인 signifier이 함께 필요하다고 말하며, 많은 사람들이 두 가지 개념을 혼동하거나 혼용하는 것에 대하여 불만을 표시하고 있다. 우리에게 매우 익숙한 문에 붙은 'PUSH' 사인이 바로 대표적인 signifier이다.


우리 일상 속 모든 디자인들에게 적용되는 말이긴 하지만, 사실 affordance를 이야기할 때에 가장 많이 언급되는 것은 바로 '문'이다. 수업시간에도, 노먼의 책에서도 모두 그렇다. 나는 그 사실로부터 affordance를 이야기할 때에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를 생각해 보았다.


문은 크게 세 종류가 있다. signifier을 통하여 나열하면 PUSH, PULL, Slide가 그것이다. Slide(옆으로 밀어서 여는 문)의 경우 손잡이가 대단히 옆으로 밀어야 할 것처럼 생긴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약간 논외로 치더라도, PUSH-미는 문과 PULL-당기는 문은 언제나 '인간이 가장 구별하지 못하는 사인'으로 꼽힌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문이 있을 때 일단 밀고 보기 때문이다. 왜일까?


사실, 문의 손잡이가 어떻게 생겼든지 간에 문은 밀고 싶다. 당기면 문이 내 몸 쪽으로 당겨지게 되고, 밀면 내 진행 방향 그대로 스무스하게(...) 밀려나가는 경우가 다수이기 때문이다. 즉, 사람들이 문을 당기지 않는 것은 손잡이의 생김새 문제가 아니라 일차적으로 자신의 진행 방향으로 가고자 하는 욕구, 본능 혹은 직관 때문이라는 생각이다.


사실 당기는 문의 경우, 누군가가 몸으로 밀었을 때 쉽게 열리면 안 되는 문(은행의 내부에서 외부로 나가는 문)이나 밀어 열면 맞은편 사람 또는 사물의 안전에 위협이 가는 경우(안에서 나오는 문이 미는 문, 밖에서 들어가는 문이 당기는 문인 경우/냉장고나 수납장 등 안에 사물이 들어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것은 아이폰을 재부팅하기 위해서 홈버튼과 전원버튼을 동시에 10여초 가량 눌러야 하는 것처럼 일부러 사용자의 본능에 제한을 둔 것이 아닐까 한다.


그 밖의 경우, 사실 문은 기본적으로 밀어서 여는 구조로 되어 있다. 사물을 어떻게 사용할지 결정하는 사용자의 능력은 일차적으로 그들의 본능과 직관에 의존하게 되어 있는 탓이다. 펌프는 누르고 싶게 만들어져 있고(위로 솟아 있으므로), 볼록 튀어나온 볼펜 뒤 버튼은 누르고 싶게 만들어져 있으며, 어떻게 열어야 하는지 모호한 병뚜껑의 경우는 돌려서 열라는 화살표나 말 등의 signifier가 포함되어 있다.


'이렇게 하고 싶다'는 본능, 혹은 직관과 맞아떨어지도록 디자인되어 있는 것이 진정 affordance가 훌륭한 디자인이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