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과 능력은 부족하지만

사중디 첫 포스팅은 나를 UXer의 길로 이끌어주신(너무 오바떠는 것 같지만 진짜임) 돈 노먼 선생님의 Udacity 온라인 강의 수강기. 원래 다 듣고 작성하려고 했는데 계속 무한히 길어지길래 1234 나누어 보기로 했다

 

제가 234 까지 다 쓸지 지금으로선 알 수 없지만요...

 

무튼 첫 포스팅은 좀 간략하게.

 

재생버튼을 누르셔도 움직이지 않습니다.

익숙한 노먼 선생님의 얼굴은 썸네일용 (마치 프로 블로거처럼 굴어보기)

그런데 제대로 된 얼굴 캡쳐가 귀찮아서 정지화면을 쓴 것이 너무 안 좋은 UX를 제공하고 있다 나만 해도 저거 동영상인 줄 알고 눌러봤잖어 ㅋㅋㅋㅋㅋㅋ 캡션에 써 있듯 저것은 그냥.. 사진입니다

 

"The one of the wonderful things about being a designer is that it helps me in my life."

강의 초반, 이름은 어느새 익숙해졌지만 얼굴은 처음 보는(^^;) IDEO의 CEO Tim Brown이 출연했다. (인자하게 생긴 아저씨임)

 

Tim Brown은 디자이너가 되는 것이 자신의 삶에 많은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자신의 일상 속 경험을 디자인하게 된다는 것. 그러니까, 무슨 일을 할 때 허둥허둥(마치 과거의 나처럼) 한다! 하는 게 아니라 design thinking을 실제 삶에 적용하여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문제에 관련된 사람들, 고객일 수도 있고 자신일 수도 있는데, 어쨌거나 그들을 중심으로 사고하게 된다는 것이다. 내가 UX를 하고자 하는 이유도 사람들의, 그리고 나의 일상생활에 가장 밀착되어 있는 영역이기 때문이어서, 이 말에는 많은 공감이 됐다.

 

노먼 교수도 이 말에 공감하면서 "Figure out what the real problem is" 라는 말을 했는데, 이것 또한 모든 UX 리서치와 디자인의 과정을 관통하는 말이 아닐까 한다. 구체적인 솔루션을 먼저 생각해내려고 끙끙대면 결국 뻔한 문제에 대한 뻔한 해결책이 나올 뿐이다. 이번 사중디를 들으면서는 나름대로 이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스스로 좀 뿌듯함. 사람들을 끊임없이 관찰하고 니즈를 파악하고자 노력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문제를 발견하게 되면 정말 놀랍고 신기하다.

 

강의 중간중간에는 퀴즈가 있다. 코드아카데미처럼 맞춰야만 넘어가거나 그런 것은 아니고...

그냥 알면 답을 쓰고 아니면 말고 아무 때나 정답도 볼 수 있는데 이왕 듣는 거 퀴즈도 풀어보자 싶어서 적어 보았다.

 

손잡이가 세 개인 잔이 어디에 쓰는 것일지 추리해 보자

 

그리고 셋이 도원결의 맺고 싶을 때 쓰는 잔이라고 얘기함(ㅋㅋㅋㅋ)

 

 

???? 어느 정도 맞아서 당황

 

실제로 15~17세기 유럽에서 흔히 사용되었다고.. 같은 컵으로, 각자 다른 부분에 입 대고 마시는 그런 잔이었다고 한다. ㅋㅋㅋㅋ그냥 좀 웃긴 에피소드로 넘길 수도 있지만, 그만큼 affordance의 중요성을 깨달을 수 있는 퀴즈였다. 왜냐하면 손잡이가 다수라는 것에 사람들은 자동으로 '나눔'이라는 의미를 부여하게 되니까.

 

손은 두 갠데 왜 손잡이가 세 개지? -> 아하, 남들하고 나눠 쓰라는 뜻이구나!

이토록 자연스러운 사고의 흐름... 진짜 멋지고 대단하지 않나요 최곤데

 

강의의 하이라이트(?)인 affordance의 예시. 사실 요만큼만 봐도 affordance를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왜나하면 affordance 자체가 매우 직관에 의존한 개념이기 때문에. 혹시 몰라서 말씀드리면 1-9 입니다.

 

 

개정판임에도 불구하고 이미 낡게 느껴지는 뻔한 예시지만, 이만큼 완벽한 것도 없다.

좋은 UX디자인이라는 것은 사실 별 게 아니다. 직관적으로 사용하기 쉬울 것. 즐겁거나 유용하거나, 아무튼 사용자에게 유익한 경험을 제공할 것. 정말... 인간들아 번뜩이는 창의력에 대한 집착을 관둬라^^

요즘 괜히 미니멀 디자인.. 이런 트렌드에 꽂혀서 제대로 버튼도 안 만들어놓고 affordance 고 conceptual model 이고 아무 것도 죽도 밥도 안되게 만들어 놓는 거 많던데 제발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음. 제발 매뉴얼을 정복해야 알 수 있는 비밀기능 같은 거 그만 만들어... 그냥 사용하기 좋으면 된다고요 미관적으로 보노보노피피티마냥 불쾌감을 주면 안 되겠지만 보노보노피피티가 불쾌한 것도 비단 미관상의 문제가 아니잖음. (화가 많은 사람입니다)

 

 

퀴즈에서 주변의 understandable design의 예시를 찾아보라고 해서, HCI 수업 때 썼던 우리 집 정수기 사진을 재탕하여 답변 제출. 좋은 점은

 

(1) 온수, 정수, 냉수로 명확히 구분되는 물의 온도

(2) 한 컵(일반적인 상식으로 약 200ml) 을 기준으로 표시된 추출량 (좌측 '추출량' 버튼으로 조절 가능)

(3) 온수는 데우는 시간이 필요하므로, 온수 표시 좌측에서 온도가 올라가는 과정을 보여줌으로써 사용자가 얼마나 기다려야 하는지 알려줌

(4) 잘 보면 물 따르는 버튼 위에 반원 형태로 원을 둘러싼 작은 동그라미들이 보이는데, 그 친구들이 채워지면서 물이 다 나오려면 얼마나 남았는지를 보여줌

(5) '잠금'은 잠깐 누르는 것으로는 활성화되지 않고, 길게 눌러야 활성화되어 실수로 온수를 잠그는 현상을 방지

 

이다. 지금 보니 냉수 표시 좌측 그래프가 올라갈수록 더 차가운 건지 내려갈수록 차가워지는 건지가 약간 혼란스럽지만, 지금까지도 내가 생활에서 사용하는 가전제품 중에는 나에게 제일 편안한 사용자 경험을 선사해주고 있는 친구다.

 

아래 사진은 fake signifier, fake anti-affordance에 대한 이미지. 차가 내려오지 못하도록 막고 있는 기둥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속이 빈 재질이라 사람이 발로 밟고도 지나갈 수 있다. 하지만 차를 막는 데에는 상당히 효과적일 것임. 어떤 차가 용감하게 "밟고 지나가지 뭐~" 하고 내려올까 저걸 보고;

 

fake signifier에 대해선 개인적인 경험에서 우러난 할 말이 좀 있다.

대과거...(2016년이 대과거라서 슬퍼진 나) 인미디 프로젝트를 할 때 우리는 '내 스스로 창조하는 작은 우주'의 경험을 좀더 극대화시키기 위해 심박센서를 사용하려고 한 적이 있었다. 나의 심장 소리에 따라 하나둘 태어나는 별... 이런 느낌을 표현하려고. 그런데 심박센서에 따라서 별 생기면 뭐다? 구려진다.. 사람의 심장은 왜 그리 느리게 뛰는가 나는 첨 알았어

 

그래서 우리는 결국 훼이크로(!) 심장 소리를 틀어주고, 손바닥 모양의 감각 센서만 설치해서 거기에 손을 대고 있는 동안만 별이 생겨나도록 바꾸었다. fake affordance와 signifier을 설치한 셈. 당시에는 사실 좀 죄책감 느꼈고... 선생님의 추천으로 고안한 방법이었음에도 우리는 약간... 이래도 되나 싶었는데ㅋㅋㅋㅋ 아냐 괜찮아 노먼 선생님이 괜찮댔어 :3

 

 

별로 좋지 않은 affordance의 예시로 든 문. 저 옆쪽의 검은 네모는 잠금장치를 숨기기 위한 용도고, 겉으로는 뭔가.. 기하학적으로 완성도 있는 비주얼을 만들기 위한 장치다. 하지만 너무 손으로 밀어야 될 것처럼 생기지 않았나요 내가 상상한 바에 따르면 저기서 비밀번호 누르는 키패드가 반짝하면서 나와야 하는데 ㅋㅋㅋ 사실은 전혀 아님.

 

예전.... 이라고 하기엔 너무 최근이지만, 예쁨에 집착하던 때가 있었다. 아무 의미 없는 투명도 70짜리 도형 같은 거 대충 아무데나 때려넣고 간지 챙기기, 디자인 전공자가 아니라는 깊은 좌절에 빠졌지만 그래도 나 어릴 때부터 툴 많이 만졌으니까 더 예쁘게 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용쓰던 시기. 하지만 그것보다 중요하고, 내가 잘할 수 있는 것이 있다는 사실을 이제는 깨달았다. 사실은 깨닫고 찾아가는 과정에 있는 거지만.

 

예쁘게 만들 수 있고 없고를 떠나 일단 중요한 것은 "the eye of a designer"을 키워나가는 것이기 때문에, 일상 속에서의 작은 관찰들부터 다시 시작해보려 한다. 노먼 선생님도 폰카(=너에게 항상 가까이 있는 것 중 가장 좋은 카메라)를 가지고 다니면서 여러 각도에서 다양한 사진들을 찍고 관찰해보라는 말을 하는 데에 1강의 한 부분을 할애하셨음. 과연 저는 강의를 무사히 듣고 무언가 나의 발전에 도움이 될 만한 통찰을 끌어낼 수 있을 것인지..!

 

~투 비 컨티뉴드~